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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like i loved you
Love one another too!

자유게시판

故 박경송 세실리아 고별사

작성자 : 사무장
작성일 : 2024-02-25 14:46:56
조회수 : 76

 

엄마 엄마

아무리 불러도 이제 더 이상 그 목소리를 들을 수가 없네요.

나에게 무슨 일이 있으면 언제 어디서든 나타나 나를 안도하게 했었는데 이제 더 이상 볼 수가 없네요.

살아가면서 세상 풍파에 지쳐 주저앉을 때마다 나를 일으켜줬던 그 온기를 이제 더 이상 느낄 수가 없네요.

암 진단을 받았던 22년 10월부터 애써 외면하려고 했던 순간이 이제 더 이상 미룰 수 없이 다가왔습니다.

 

엄마의 모습은 고요하고 평온합니다. 

인명은 재천이고 여한이 없다고 했던 말씀처럼.

엄마와 작별하는 이 순간, 여기 모인 우리는 인생의 고비마다 우리가 힘낼 수 있게 했던 엄마의 사랑에, 

고마움을 다 표현하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워 눈물 흘리고 있습니다.

 

 

초긍정의 엄마는 집안의 해결사이자 분위기 메이커였으며 가족 모두를 하나 되게 했던 구심점이었습니다.

대구에서 박수용 백갑선 부부의 1남 3녀 중 셋째로 태어나 칠십 년 넘는 세월을 살아오며, 

작은 체구에서 어떻게 그런 막강 에너지가 나왔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한 힘으로, 

부모 형제자매 남편 자식, 조카, 손주 모두를 살게 했습니다.

엄마 덕분에 때론 답답하고 때론 힘겨운 세상에서 숨 쉬며 살아낼 수 있었습니다. 

엄마는 내가 세상을 살아가는 힘이었고 언제 어디서나 당당할 수 있었던 굳건한 뿌리였습니다.

 

엄마가 점점 말없이 주무시는 시간이 길어지고 내가 혼자 이야기하는 시간이 많아졌지만, 

엄마 숨소리라도 들을 수 있어 좋았는데, 이제 그마저 멈춘 지금, 나는 배가 고프기 시작했습니다. 

어제는 평소에도 잘 챙겨 먹지 않던 세 끼를 다 먹었습니다.  

‘내가 너를 만나 행복했고 고맙고 사랑한다’고 말해주셨던 엄마 덕분에 항상 속이 뜨뜻하니 든든했나 봅니다.

세상에서 제일 불쌍한 사람은 엄마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이제 내가 그렇습니다. 

앞으로 나는 이 허기짐을 무엇으로 채워야 할까요.

 

어제 하루 종일 조문객을 만나고 잠깐 쉬는데 어느새 구겨져 있는 치마 주름이 보였습니다. 

기억하세요? 교복을 입었던 고등학교 시절, 나는 전교에서 칼날 같은 치마 주름으로 유명했습니다. 

아무리 바빠도 엄마는 내 주름치마를 반듯하게 다림질해 주셨습니다. 

엄마가 그러셨지요. 옷매무새가 반듯해야, 언행도 반듯해진다고. 그 말씀 새기며 살겠습니다.

 

지난 1년 남짓 한 시간 속에서 엄마가 부르면 무조건 달려가 손을 잡아주는 생활을 하였습니다. 

겨우 1년 남짓했는데도 나는 슬슬 지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엄마는 그걸 오십 년 넘게 하셨네요. 짜증 한번 없이. 더 주지 못해 안타까워하며. 

그런데도 나는 숨소리라도 들어도 좋으니 좀 더 곁에 있어달라며 

힘겨워하는 엄마를 여지껏 붙잡고 있었습니다.

 

육신의 고통에서 벗어나기 며칠 전에도 그러셨지요. ‘고생시켰다. 고맙다’

나는 압니다. 엄마가 내가 고생할까 봐 며칠 전부터 물도 거부하며 떠날 시간을 앞당긴 것을. 

마지막까지 자식만을 생각한 엄마한테 어리석고 미련한 자식은 십분의 일도 갚지 못한 아쉬움으로 

이 순간. 회한의 눈물을 흘리고 있습니다.

 

아낌없이 주고 헌신하셨던 엄마. 이제 더 이상 잡지 않을게요.

항상 엄마가 먼 길 떠나실 때는 내가 동행했었는데 이번 길은 혼자 가셔야 합니다. 

먼저 가서 가끔 어떤 곳인지 꿈에서라도 귀띔해 주세요.

 

언젠가 다시 만날 때까지 여기 우리 모두는 주님 말씀 안에서 살며 엄마를 위해 기도하겠습니다. 

엄마가 없는 세상은 벌써부터 재미가 없을 것 같은 생각이 들어 힘이 좀 빠지지만, 

당신의 딸로 의롭고 당당하게. 많은 사람들에게 밝은 에너지로 힘을 주며 최선을 다해 살아볼게요. 

난 엄마 딸이잖아요. 나의 엄마여서 감사했습니다. 

아버지도 동생도 다른 가족들도 걱정 마세요. 우리 모두 서로 아껴주며 살아갈게요.

 

노래 부르기를 좋아하고 이야기하기를 좋아하고.

선글라스 끼는 걸 좋아하고 또 선글라스가 잘 어울리며.

의롭고 인정 많고 상냥하고 유쾌하고 재미있는.

그래서 어딜 가나 인기 많고 사랑받았던 엄마. 많이 그리울 겁니다.

 

그동안 가족의 날개 없는 수호천사였는데 이제 육신의 고통에서 벗어나 

진짜 날개를 달았으니 하늘 높이 훨훨 날아오르세요. 

하늘 가득 피어난 눈꽃 송이처럼. 우리 모두 당신을 존경하고 사랑합니다.

그동안 많이 고마웠습니다. 당신의 영원한 안식을 위해 기도합니다.

엄마 이젠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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