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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빵 이야기

작성자 : 심종수보니파시오
작성일 : 2024-02-02 12:57:43
조회수 : 78

빵의 진정성은 발효에서 찾을 수 있다. 발효시기 이전의 빵은 어찌 보면 원시적 상태에 머물러 있었다. 납짝한 빵(flat bread)은 완전한 형태를 갖기 이전의 상태로 본다. 그래서 어떤 학자들은 발효시킨 빵을 제대로 된 빵의 발명으로 보았다. 발효 전 상태는 여전히 원시상태로 본 것이다.


밀을 제외하고 기장, 보리, 귀리, 옥수수로도 빵을 만들 수는 있지만 그것들은 절대 부풀어 오르지 않는다. 그래서 빵은 밀(호밀은 좀 약하다)의 역사로 간주된다.

부풀어 오른 빵은 밀의 반죽에 효모나 또는 발효제를 넣어 오븐에 넣고 구운 음식이다. 발효법은 갑자기 없던 신공법이 뚝딱 생겨난 것이 아니다. 특히 이집트 농촌에서는 그 이전부터 맥주를 제조하는데 효모를 이용하는 법을 알고 있었다. 아마도 맥주를 제조하는 용기와 빵 반죽과의 직간접 접촉 등으로 공기중 발효 원인인 효모가 환경 속에 존재하고 있었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볼 때 대단한 사실은 고대 이집트 농부들은 나중에 자연 발생적인 효모를 이용하지 않고 직접 효모를 관리했다는 것이다. 무슨 말이냐 면 그들은 신비하게 부풀어 오르는 그 반죽이 된 물성을 별도로 집에서 보관하고 있다가 새로 빵을 만들 때 첨가하는 것이다. 계속 효모균의 새끼를 치는 방식이다. 효모를 버리지 않고 저장하는 법을 터득했다는 것이 놀라운 것이다. 물론 그 신비가 밝혀진 것은 근대 현미경의 발견과 루이 파스퇴르의 공로를 통해서이다.

 

람세스3.png

 (이집트 람세스3세 고군벽화, 윗 상단 장대를 든 두사람은 밀반죽을 발로 짓이기고 있다) 

 

그 발효라 알려진 과정에서 CO2가 발생하여 반죽 내부에 잔존된다. 기체는 이후 완전한 빵이 되어도 바깥으로 날아가지 않고 그대로 공기주머니 상태로 보존된다. 밀에 함유된 단백질 그루텐의 함유 때문이다. 모두가 납작한 빵보다 부풀어 오른 빵을 더 사랑했다. 휠씬 더 맛있다.

 

빵은 직화에서는 빵이 되는 것이 아니고 꼭 오븐이 있어야 했다. 그래서 그 때부터 입식 화로 오븐이 만들어졌다. 오븐의 형태는 원형인데 아래는 넓고 위로 갈수록 좁아지는 삼각형 형태로서 이런 설비는 로마시대에 본격적으로 발전되었고 현재도 유럽이나 이태리 개인 빵집에서는 유사한 형태로 빵을 제조한다.  

빵이 부풀어 오른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인류사적으로 가장 위대한 발명이다. 이집트인들의 창의와 노력이 만든 지적재산권이다. 그들이 다음 세대에 넘긴 위대한 유산은 인류를 구원한 초석이 되었다.  콜럼버스가 신세계를 발견한 것은 거기에 놓여 있는 것을 조금 일찍 발견한 것이다. 그가 아니라도 조금 후에 누구라도 찾을 수 있는 종류의 발견으로 본다.

 

 

기원전 시작된 부풀어 오른 빵의 발견은 계속 진화를 한다. 전체 기간으로 보면 지금까지 거의 6천년 정도에 달한다. 납작한 빵이 아니고 효모가 들어간 빵이 발명된 기간을 의미한다. 이집트인들은 밀에다 여러가지 곡물을 섞고 다양한 향과 맛을 추가하여 사람들의 다양한 입맛에 맞게 변종 빵이 만들어졌다.

밀의 기원을 연 초기 재배종은 엠머(emmer) 밀이다. 중심축에 붙은 밀배열이 4열로 된 밀의 조상 격 종이다. 현재 주종 밀은 6열 배열종이다. 초기의 밀 빵은 귀족이나 신분이 높은 사람들이 주로 먹는 것으로 인식되었다. 소위 흰 빵과 검은 빵으로 부자와 빈자를 구분하여 먹었다. 나중에 로마인들은 이 밀을 이집트에서 대량 재배를 하였다. 즉 이집트는 로마를 위한 식량공급 기지로 활용되었다. 

 

 

나온 김에 이집트 나일강에 대해 조금 알아보기로 하자. 나일강은 길게 이집트 전역을 남과 북으로 관통하는 긴 강이다. 과거에는 세계에서 가장 긴 강으로 알려지기도 했다. 약 8,000 km라 한다. 이집트는 나일강 말고는 다른 수원이 없다. 강 유역을 따라 발전한 도시 외에는 사막 같은 지형으로 수자원이 없다. 강의 근처에 연결된 지역만 크게 발전이 가능했다. 나일강은 천혜의 혜택을 그 지역에 베풀었다. 나일강 수로를 따라 곡물의 교역과 이동이 원할히 되기도 했다.  기름진 토양과 적절한 비를 뿌려 풍요한 밀 농경 환경이 가능 하였다. 

 

그러나 또 다른 심술을 부리기도 했다. 나일강의 범람은 거의 매년 발생하여 농지를 흔적도 없이 쓸고 갔다. 물길이 쓸고 간 농토지형은 개인의 경계 지역을 구분할 수 없는 지경이 된다. 그들은 매년 농토의 지형 측량을 다시 해야 했다. 측량기술이 발전되어 이것은 과학의 발전 계기가 되었다. 이집트의 과학은 그리 만들어졌다. 나일강의 선물은 빵의 메카가 되기도 하고 계절을 예측하는 기술과 과학의 분야에도 큰 성장을 베풀었다. 그 원천기술을 이용하여 고대시절에 지구상에서 가장 위대한 제국이었다. 풍요한 제국이 되었다. 밀로 된 발효 빵은 문명의 극치였고 이 노하우는 인근 타 제국으로 전해졌다. 그리스 문명권으로 먼저 전파된 후 다음에는 로마로 이어졌다. 

 

 

다음 실제적으로 빵을 체계화시킨 나라는 로마였다. 그들은 이집트인들이 전해준 차원을 뛰어넘는 제빵의 혁신을 이루었다. 질적으로 모양으로 종류까지도 너무 다양하게 발전을 이루었다. 세계의 으뜸인 만큼 더 고급스러운 제빵을 요구하게 되었다. 약1세기가 될 무렵에는 보통사람들도 밀로 된 흰 빵을 먹기 시작했다. 프랑스는 나폴레옹 시절에도 흰 빵을 먹는 사람이 극히 적었던 것과 큰 비교가 된다. 중세와 근대보다도 후기 로마 시절은 더 풍요한 시절이었다. 제빵사라는 직종이 공인되었고 그들 만의 길드조합도 결성되었다. 로마시대 기록에 의하면 속주에서 가져온 온갖 물산을 혼합하여 품질 좋고 호화스런 빵이 등장했다. 

 

로마 시절의 제빵사는 현대의 제빵사보다 더 다양한 빵 종류를 만들었다. 초기 집에서 구운 빵을 먹던 시절에서 어느 때부터 인지 전부 전문 제빵사가 만든 제품이 식탁에 오르기 시작했다. 제빵사들은 현대로 치면 디자이너와 같은 최고의 위치에 도달했다. 빵을 연구하는 학교와 도제기관도 도처에 설립되었다. 로마의 황제가 그들에게 특권을 부여할 정도까지 되었다. 국가의 관료화까지 오르게 되고 당연히 봉급은 국가에서 제공하였다. 물론 그 조치로 말미암아 복잡한 사회문제를 야기하기도 했고 이는 로마의 국력을 쇠약하게 만든 요인이 되었다. 

 

결론을 말하면 빵은 한때 로마를 위대하게 만들었고 후기에는 로마를 쇄락하게 만든 주요 원인이 되기도 했다. 문제의 본질은 편중된 농지정책 탓이다. 그러나 농지 과점의 대지주들은 잘못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라쿠스의 농지개혁법은 벽에 부딪친 좌절된 개혁이다. 기득권 세력이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 역사의 아이러니이다. 그래서 제국은 소멸했다. 남의 이야기 아니다.

 

 

계속 중세 시기에 대한 빵 이야기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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